시 쓰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아무리 복잡하게 이야기하더라도, 시란 결국 말의 선택과 배치이다. 어떠한 말을 통해서, 어떠한 구성을 이루느냐가 시의 정체성이고 매력의 근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의 조직과 결은 시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언어를 품고 언어 감수성을 갈고 닦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오랜 훈련이 녹아들어 있을수록 언어 구성체는 민활하고 풍성해진다.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영혼의 굽기」 외 6편,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외 9편, 「그린」 외 6편은 각각 자신만의 언어 감수성을 보여주는 고유한 시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영혼의 굽기」 외 6편은 청량하고 발랄한 감각이 눈에 띈다. 묵은 감정이나 생각 같은 것이 별로 없다. 언어와 사물이 연결되어 있던 그동안의 낡은 습성을 헐어내고 양자 간의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여 사물을 새롭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마가 뜨겁길래/조용히 구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짐을 내려주다가/코가 뒤로 길게 자라난 것을 알게 되었다” “체육 시간이 끝나면/체육을 잃은 공처럼/교과서에 조용히 엎드렸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숨어/책상의 기분을 따라 했다//하루종일 입 속에/책을 넣고 다니는 기분”과 같은 신선하고 감각적인 언어들이 도처에 포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들이 그 청신함을 넘어서 문제적인 지점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외 9편은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돋보이는 시편들이다. 어떠한 말이나 구절이 출현하면, 이 말은 까다롭고도 긴밀한 연쇄적 반응을 일으키며 전개된다. 때로 냉소적으로, 때로 뒤틀리며 얽히는 후속 구절은 앞의 말을 변화시켜나가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집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다”라는 문장은 곧바로 “나는 집구석의 구석에 앉아있고 구석구석 소리가 북받친다”로 이어진다. ‘집구석’이라는 말은 집의 한쪽에 위치한 좁고 제한된 공간뿐 아니라, 비천한 모멸성을 의미하는 이중의 의미로 엮여 든다. 언어들이 얽히고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말의 움직임과 힘을 자각하는 감수성이 전해진다. 다만 이것이 과도해져서 말의 꼬리를 물고 가는 것 같은 메카닉한 전개에 들어서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린」 외 6편은 명료한 문장으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데 탁월한 작품들이다. 이렇게 선명한 묘사를 하기까지 언어의 데생력을 훈련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특히 명사와 동사의 구체성은 7편의 시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어제는 걸었어” “소주를 사마셨어”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머리가 좀 아프다”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이 장면들을 손에 잡힐 듯 다가오게 한다. 이 중에서 「영원성」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한다. 해수욕장에서 도로까지 너와 함께 걸어가는, 표면적으로는 사소한 정황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광객이 많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많은 제주의 도로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도로에 멈춰 서” 버리는 낯선 상황이 제시된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은 ‘귤’의 상태로 미묘하게 표현된다. 처음에는 ‘무른 귤’을 들고 걸었는데, 그것은 멍든 귤이고, 차가 많은 도로에 들어서면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이 터진 귤”이 되어버린다. 가야 할 길과 터져버린 귤의 대조가 매력적이다. 독특한 감각과 감수성이 앞으로도 더 풍부하게 발전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이번 심사과정 중에 「영혼의 굽기」 외 6편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외 9편이 중복투고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중복투고 금지는 기본 윤리다. 기본을 잘 숙지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이승하·이수명(본심), 황인찬(예심)
이번 심사에서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으로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창의적인 표현과 구성으로 구체성과 개연성을 획득했는지 이야기의 전개가 독자를 설득하여 감동을 주는지에 기준을 두었습니다. 최종심에 올라온 「7차선 도로」, 「이웃집 킬러」 「새들이 추는 춤」 세 작품 중, 대상작으로 「7차선 도로」를 선정하였습니다.
「7차선 도로」는 평범하고 무탈하던 가정이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균열되면서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육십 대 운전자인 아버지가 낸 교통사고로 재수생인 남학생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고령 운전자’를 위해 <7차선 도로법>이 만들어진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어머니에게서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혼자 출산을 하고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이후 어머니는 내내 불안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경도 인지장애 증상을 보인다. 어머니를 친정집에서 멀리 떨어진 요양 병원에 보내려고 입원 전 검사를 받게 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남편의 차에서 오 년간 식물인간으로 있던 교통사고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남편에게서 교통사고는 아버지가 낸 게 아니라 운전을 갓 배운 어머니가 핸들을 잡고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남학생을 치었다는 진실을 마침내 듣게 된다.
양심의 가책으로 방황하는 어머니, 사고 책임을 대신 지고 사이가 멀어진 아버지, 냉정하고 이기적인 남편과 시댁 등 행복을 가장한 위태로운 일상의 치밀한 전개와 심리적 변화를 ‘의식의 흐름’으로 차분하게 풀어낸 점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다만, ‘보여주기와 말하기’가 함께 구성되는 게 소설 장르의 표현 양식인 만큼 중요한 부분의 장면 묘사가 없고 위기와 갈등을 모두 일인칭 독백으로만 풀어낸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웃집 킬러」는 발단, 전개 부분에서 뿌려놓은 공포 분위기의 복선과는 달리 ‘복서’라는 이웃집 남자의 정체와 거리에서의 괴한의 퇴치 사건 등은 균등한 에피소드로 연결되었다. 주제의 심화성 부족, 소설의 생명인, ‘갈등과 위기’라는 구성을 갖추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새들이 추는 춤」은 변신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지만 변신에 대한 정확한 형식적 틀이 작품 전반에 제시되지 못하고 도입 부분과 결말에서만 변신 모티브가 적용된 점이 아쉬웠다. 차라리 변신이라는 가상의 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노령자들의 사회 문제만을 그렸다면 더욱 공감을 주었을 것이다.
참가한 작가님들 모두 애쓰셨습니다. 문학상 심사는 각 작품의 내포적 완성도에 관한 평가이지 창작품들끼리의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므로 자신의 독창성, 창의성, 천재성을 발휘하여 유기적 생명체인 소설적 완성에 더욱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심사위원= 방재석·박혜영(본심), 이준희(예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