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와 함께 춤을」 외 6편은 눈앞의 현상을 보면서 사유를 비약적으로 증폭시키는 시편들로 되어 있다. 이러한 발상은 새롭고 흥미로워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전거를 매만지는 인물을 보면서 그가 피에로를 꿈꾸다가 아이일 때 죽었는데 악마로 다시 태어나 악마의 연기를 하는 상상이라든지, 성당 분수대에 놓인 컵이 높이 던져져도 깨지지 않는, 몸에 신을 들여놓은 존재로 묘사된다든지, 천사와 같이 방송에 출연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은 시에서 도약의 즐거움을 이해하고 있는 태도로 생각되었다. 다만 도약이 과해서 시가 신기로 연결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페인팅」외 6편은 감각적이고 편안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해 나가는 호흡이 돋보였다. 인물도 어머니, 아버지, 애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고, 장소도 집이나 학교같이 친숙한 곳이며, 등장하는 장면 역시 토마토 샐러드를 만들거나 술을 마시고, 학교에서 질문을 하거나 카레를 만들며 폐기물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 일상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장면들이 큰 무리 없이 진행되면서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편안하지만 한편 너무 평이해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작품의 흡인력과 매력을 살리려면 더 선명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1000/70」 외 6편은 구체적인 언어 구사가 눈에 또렷이 들어오는 작품들이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할 때나 노동이나 생활 현실을 진술할 때도 이 구체성은 흔들리지 않고 시를 지탱해 주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증금이나 월세, 장례비, 학원비, 주휴수당, 상품가치, 공중화장실, BHC 후라이드치킨, 하코즈시 등과 같은 생활 언어들은 시가 공상으로 떠밀려 다니거나 복제적 동어반복으로 흐르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위에서 일하고 아프고 슬프고 울고 걷고 그리워하는 삶의 지난한 모습들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여러 편의 시 가운데 「1000/70」을 장원으로 선정한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의 집에서 세 동료가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능력은 없는데 주인이 집세를 올리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항우울제를 먹는 쥐에 비유한 존재론이 펼쳐진다. “도어락 번호 누르는 소리가 사람인지 쥐인지 헷갈릴 때쯤”에 이르러 다 먹어 떨어진 약과 팔리지 않는 꿈과 없는 집의 결합은 극점에 이른다. 이 극점을 담담하게 담대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사위원 = 이승하·이수명(본심), 송승언(예심)
[제35회 의혈창작문학상 소설부문 심사평]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응모작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서사 구조와 장르적 장치를 활용해 젊은 세대 특유의 감수성을 성실히 드러내고자 했다. SF적 상상력, 환상적 장치, 상처 서사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이러한 형식적 시도에도 이미 익숙한 정서와 미학의 경로를 반복하는 데 머무르거나, 새로운 주제적 도약에까지 이르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다마고치와 내가 두고 온 밤>, <모든 것을 위하여>였다.
<다마고치와 내가 두고 온 밤>은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는 이야기이다. 젊은 나이에도 점차 기억을 잃는 청년 치매 화자, ‘망가진 사람’들의 옆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기억의 발견을 통해 어떤 삶을 응시하는 성찰과 태도를 차분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인물의 변화가 화자의 내면 독백 안에서 머물러 서사적 긴장감이 약했다.
<모든 것을 위하여>는 ‘모든 것’이라는 특이 생명체를 통해 인물의 숨겨진 욕망을 극대화한다. 특히 결코 피폐한 일상 안에서 감추거나 혹은 자각하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시선이나 개인적 욕망 같은 것들이 ‘모든 것’이라는 특이 생명체에 투영되어 드러나는 과정이 신선했다. 그러나 인물 욕망의 정체, 관계 등 서사적 측면에서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해 아쉬움이 남았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은 사랑에 빠지면 ‘게’로 변하게 되는 세계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관계 맺기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자기 수용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 설정은 SF적 외피를 지니면서도 삶의 태도를 묻는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문장은 감각적이고 밀도가 높았으며, 파이프라인 수리라는 모티프가 서사 전개와 주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디테일한 세계관 구축은 설득력 있게 이루어졌다. ‘게가 되지 못한 실패한 존재’에서 ‘게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 존재’로 나아가는 결말 역시 매력적이었다. 사랑의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이 결단은, 대학생 작가의 작품임에도 매우 사려 깊고 성찰적인 태도였다.
우리는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대학생 작가로서 보기 드문, 완성도 높은 세계관과 은유적 깊이를 보여주었다. 형식적 실험과 문학적 감수성의 조화, 그리고 청년 세대가 느끼는 관계의 강박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점에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 앞으로 이 작가가 보여줄 더 깊은 서사적 실험과 주제의 확장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방재석·김서령(본심), 이준희(예심)